100 달러 이미지

1971 닉슨쇼크, 금본위제 폐지에 따른 불태환화폐와 암호화폐의 실체

지금 쓰고 있는 화폐는 실제적 가치를 지녔다, 안 지녔다 하는 역사를 반복해 오고 있다.

2차대전 후 미국이 세계를 평정하며, 달러 베이스의 태환화폐1의 시절을 보냈다.

그러다, 1971년의 닉슨쇼크로부터 금본위제가 폐지, 불태환화폐(=불환화폐)2가 되며 실제적 가치를 잃었다.

화폐에 실체가 있느니, 없느니 하는 것은 태환화폐가 불환화폐로 변하던 1971년에 이미 세계를 달궜던 화두이다. 그리고, 현재의 화폐시스템은 실체가 없는 상태에서 지속해 오고 있다고 볼 수 있다.

암호화폐는 실체가 없는 허상이예요

암호화폐를 반대하는 분들의 흔한 주장인데, 그 이전에 현행 화폐의 실체부터 다시 생각해 보도록 하자.

무슨 소리인가. 내 지갑에 멀쩡히 지폐가 실체로 들어 있는데.

우리 지갑속 5만원권이 실체적 가치를 가지고 있는지 곰곰히 생각해보자. 사실 종이 쪽지에 불과하다. 만인에게 상식화 되어 있어서 그 가치를 의심하지 않을 뿐이다. 화폐의 역사에 대해 간략히 짚으며, 이 상식에 의심을 시작해보자.

애초 화폐엔 실제 가치가 있었다. 금/은, 또는 금화와 은화.

오래 전엔 의(衣)∙식(食)에 쓰이는 것들이 물물교환의 기초단위가 되었다. 포목/쌀/밀 등의 실제 필수재료들 말이다.

이들로는 큰 거래가 힘들었다. 점점 작고 값나가는 금/은을 쓰게 된다. 작은 거래는 의/식 자재, 큰 거래에는 금/은이 교환의 기준으로 자리잡아 간다.

나아가 쓰기 좋게 규격화된 금화와 은화가 만들어진다. 이는 녹여도 얼추 그 만큼의 실제 가치를 지닌다. 재료값이 액면가만큼 들어가니 위조화폐를 만들어 봤자 실익이 없다.

그러나 이는 무겁고 불편했다. 거래 규모가 커지면 돈을 큰 가방이나 수레로 운반해야 할 노릇이었다. 포목/쌀/밀/금/은 등의 실제적 가치를 지니는 화폐를 실물화폐(혹은 상품화폐, commodity money)라고 한다.

실체적 가치가 사라졌다. 사용하기 편하기만 하면 되지.

경제가 커지며, 국가들은 자신들이 찍어내는 돈이 가치의 기준이 되길 바랬다. 가장 쉬운 방법은 세금을 화폐로 걷는 것.

사람들은 점점 정부발행의 화폐에 익숙해져 갔다. 실제 가치는 없지만, 가볍고 작은 화폐의 편리에 빠져 들었다. 숫자만 다르게 인쇄된 지폐를 쓰면, 거액의 거래나 세금을 걷는데 수반되는 수레로 옮겨야 할 수고가 필요 없어졌다.

실제 가치를 갖고 있지 않는다는 사실이 화폐발행에는 너무도 큰 매력이었다. 화려한 궁전을 짓건, 군사들 월급을 주건 돈을 찍기만 하면 마음껏 지급할 수 있었다.

화폐가 실제 가치를 갖고 있다면 할 수 없는 일들이다. 이는 국가/정부/황실등으로 하여금 막대한 권력을 갖게 했고, 그 남발은 엄청난 혼란을 일으켰다.

어쨌건, 실제 가치를 갖진 않았지만 서로 믿고 거래하는 명목화폐(fiat money)의 시작이다. 실제 가치를 갖지 않으니, 위조화폐의 시작지점이기도 하다.

화폐가 다시 실제 가치를 띤다. 국제 거래를 위한 금본위제와 태환화폐.

인류는 1차대전과 2차대전을 겪으며 전쟁배상금을 지불하는 과정에서 돈을 찍어 갚는 일들을 벌였다.

자국내에서 돈을 찍어 하던 짓들이 국제사회에선 먹히지 않았다. 찍을 때마다 화폐의 가치는 급락, 받아본들 이내 휴지가 되었다. 이제 상대국의 돈을 믿을 수 없는 상황이 되었다.

이 때 기타국의 화폐는 언제든 달러로 바꿔주고, 달러는 미국이 언제든 금으로 바꿔주는 [브레튼 우즈] 체제가 출범하게 된다. 1944년 체제의 시작 당시 $35는 1온스의 금에 대한 청구권이었다.

이걸 Federal Reserve Note(미연방 지폐)가 금으로 backed(뒷받침)되었다고 이야기 한다. 기타국의 화폐는 달러로 backed되고, 달러는 금으로 backed 되어 신뢰할 기준이 정립되었다. 금의 backed에 의해, 화폐는 다시 한번 실제가치를 갖게 된다.

비유하자면, 믿을 만한 귀금속점에서 금 1kg을 창고에 쟁여 둔다.

그리고, 귀금속점 주인이 나다니면서 10곳의 가게에서 금100g짜리 교환권을 쓰는 것이다.

이걸 받은 가게들은, 저기 믿음직한 귀금속점에 언제든 찾으러 가면 된다며 자신들이 받은 교환권을 다른 곳에서 쓰게 된다

이 교환권이 돌고 도는 유통이 발생하는 것이다.

그러곤, 귀금속점 주인을 한번도 본 적 없는 사람이 금을 찾으러 가게 된다.

금 교환권은 익명성을 획득, 금 청구서가 되어 믿을만한 화폐로 자리잡게 된다.

이렇듯 지폐들은 “금 청구서”였다.

현대영어에서 100 dollar bill은 100달러 지폐라고 해석하지만, bill은 청구서라는 뜻이었으니, 100달러(어치의 금) 청구서라는 말이기도 하다. 지폐 한 켠에 연방은행이 적혀 있는 건 이 곳으로 금을 청구하러 오라는 뜻이었다.

이 때부터 국제거래에는 무조건 달러가 필요하게 되었다. 이걸 달러가 기축통화가 되었다라고 한다.

미국 바깥에서도 쓰이는 세계의 화폐가 되었으니, 훗날 태평양 너머 한국땅에서 달러종신보험도 출시되는 근간이다.

미국은 달러를 발행할 때마다 금을 사모았다. 달러는 언제든 다시 연방정부에 가져가면 금으로 바꿔줬다.

세계경제는 안정화 되어 갔다. 금도 없이 함부로 돈을 발행해대는 기타국들과 달랐다.

그러지 않고선 [실체도 없는 종이쪽에 불과한 달러]를 누가 믿는단 말인가.

닉슨쇼크! 화폐는 실제 가치를 잃고, 불태환화폐가 되어 현재까지 내려오고 있다

그러다 미국은 베트남전과 오일쇼크를 겪게 된다.

많은 나라들이 미국의 연방준비시스템(Federal Reserve System)이 금을 실제로 보유하고 있는가 의구심을 갖게 된다. 결국, 프랑스로부터 대량의 금을 요구받기에 이른다.

1971년, 미국의 닉슨 대통령은 더이상 금이 없다고 자백하게 되는데 이를 [닉슨 쇼크]라고 한다. 금이 없어 바꿔주지 못 하니, 그대로 쓰라는 것이다. 달러의 부도사태다.

위의 1kg 금을 보유한 귀금속상의 예를 다시 한번 끌어와 보자.

귀금속상이 금 청구서를 쓰고 다녔다. 세월이 지나니, 청구서 중 일부가 돌아오지 않았다. 아니, 대부분의 청구서는 청구없이 돌고 돌기만 하더란 것이다. 종이 청구서가 금보다 훨씬 편한 것이다. 귀금속상은 몰래 금도 없이 청구서를 인쇄해서 사용하기 시작했다. 그러다, 대량의 금 청구가 들어오니, 부도를 내 버린 것이다.

2차대전 이후의 최강 승전국이라 믿고 미국에게 시스템을 맡겼는데, 이런 사달이 났다.

달러가 [실체가 없는 허상]이었다며 대혼란이 찾아왔다.

자연스레 서로 다른 화폐간, 화폐와 실물간의 교환에 있어, 그 교환비율이 변동하게 되었다. 금으로 backed되지 않으니, 달러의 교환비율은 폭락했다. 그런데, 용케도 국제거래의 기준인 기축통화로서는 용인3되게 된다.

이것이 현대까지 이어져오는 [변동환율제]다. 워낙 무시무시한 미국이었기에 비난은 할지언정 아무도 덤비거나 응징하지 못한 것이다.

인류는 1971년부터 이미 실체없는 화폐를 서로 용인하며, 교환비율에 변화를 줘가며 쓰기 시작한 것이다. 현대의 변동환율제에 달러 기축통화 시스템은 그리 오래지 않았으며, 인류는 지금도 길들이는데 애를 먹고 있다.


화폐시스템에 대해 처음부터 다시 생각해 볼 때이다

의/식자재를 물물교환하던 사람에게 금/은을 기준으로 하는 거래는 실용성을 저버린 행위로 비쳤을 것이다.

먹지도 입지도 못 하는 것으로 뭘 한다고!

또한, 금/은/금화/은화를 쓰던 사람은 금 청구서가 미덥지 않았을 것이다.

도대체 뭘 믿고 종이쪽지 한 장 받아두고, 물품들을 내준단 말인가!

그러나, 인류 화폐는 실체성(혹은 신뢰성이나 실용성)과 편의성에 따라 엎치락뒤치락하며 진화해 왔다.

필자는, 암호화폐에 대해 실체가 없다고 말하기 이전에, 기존 금융/화폐 시스템에 대한 근본적인 의구심이 필요하다 생각한다.

각주

  1. 달러를 정부에 가져가면 금으로 교환해주는 시스템
  2. 현대에는 달러든 원화든 정부에 가져다 준다고 금으로 바꿔주진 않는다
  3. 미국은, 전 세계 원유시장에서 달러로만 거래하도록 강제하는데 성공함으로써 기축통화 지위를 유지해내고야 만다